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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수 (19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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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흥수(1921년)는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항일 학생 결사 활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10월,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작품집 간행을 시작으로, 1940년 1월에는 책자 〈반딧불〉을 발간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항일학생결사 '대구사범학교문예부'를 조직하고, 1941년에는 비밀결사 '다혁당'을 결성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8·15 광복으로 출소 후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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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수 (1921년)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유흥수
한자 표기柳興洙
출생일1921년 6월 22일
사망일2016년 2월 12일
출생지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서산군 운산면 고산리 137번지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92번지
직업독립운동가
거주지일제강점기 충청남도 홍성군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시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경산시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경기도 인천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
대한민국 경기도 시흥시
대한민국 경기도 연천군
대한민국 강원도 춘천시
대한민국 제주도 제주시
대한민국 충청남도 청양군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시
종교유교(성리학) → 개신교(침례회)
본관전주(全州)
학력충청남도 천안보통학교 졸업(1934년)
경상북도 대구사범학교 졸업(1940년)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1956년)
정당무소속
경력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
웹사이트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2. 생애

충청남도 서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충청남도 홍성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후 충청남도 천안에서 성장하였다. 1939년 7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 철도 노선 매립 작업에 근로 동원 처분 조치되었던 경상북도 대구사범학교 학생들 중 5학년생을 중심으로, 평소 민족 차별을 일삼던 악질 일본인 작업반 반장을 작업장에서 구타한 일이 있었다. 그 후 대구사범학교 4·3·2학년 학생들은 선배들의 항일저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윤독회를 조직하였다.

이후의 독립운동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독립 운동 문단을 참조하라.

1945년 8·15 광복 이후,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을 지냈다.

2. 1. 독립 운동

1939년 10월 초순, 유흥수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동급생들과 함께 각 기별(期別)로 윤독회(輪讀會)를 조직하여 우리 민족의 역사, 문학 서적을 윤독하며 월 1, 2회 모임을 가졌다. 1939년 10월 하순에는 박효준(朴孝濬)·이태길(李泰吉)·강두안(姜斗安)·문홍의(文洪義) 등과 함께 항일민족의식을 담은 작품집을 간행하기로 하고, 1940년 1월에 〈반딧불〉이라는 책자를 간행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하였다. 책자의 주요 내용은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것들이었다.

1940년 11월 23일, 유흥수는 박효준 등과 대구 봉산정(鳳山町) 이태길의 하숙집에서 표면상 문예활동을 표방하는 항일학생결사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비밀엄수 및 매주 토요일 작품감상 등을 결의하고 동지 포섭에 힘쓰면서, 1940년 11월 30일부터 1941년 3월 9일까지 약 9회에 걸쳐 회합을 갖고 민족문화 존중과 항일의식을 함양하였다. 1941년 3월에는 기관지 「학생(學生)」을 발간하여 부원들에게 배부하였다.

1941년 1월, 임굉(林宏) 등의 주도로 비밀결사 「연구회」가 조직되어 「문예부」와 비슷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2월, 졸업을 앞두고 문예부원 일부와 연구회원 전원이 졸업하게 되자, 유흥수는 1941년 2월 15일에 문홍의·권쾌복(權快福)·배학보(裴鶴甫) 등 15명과 함께 자신의 하숙집에서 항일학생결사인 다혁당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은 문예부와 연구회의 조직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교내 조직을 넘어 타교생 및 일반 사회인까지 포섭 대상으로 하였다. 유흥수는 문예창작 책임 일을 맡았으며, 1941년 3월부터 5월까지 세 차례 모임을 갖고 당의 활동 상황과 조직 확대에 관하여 협의하였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경에 발각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유흥수도 체포되어 2년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1943년 11월 6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으로 출감하였다.

3. 서훈

대한민국 정부는 유흥수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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